「전생과 인연」,  1997년 초판 출판 , 기린원

 

 

 

      욕망과 곤단한 삶을 뒤로 하고 홀로 가을 걷이가 끝난 비 내리는 늦가을 들녘이나
    눈 내리는 차가운 동해 바다를 찾으면 우리는 시인이 되고, 우리의 몸에는 문학이
    흐릅니다.
    황량함과 적막함이 있는 자연 속에서 또 다른 능력과 자신감이 찬 우리 자신을 발견
    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자신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저는 역학(易學)을 공부하며 평범한 화가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문득 스치는 바람
    속에, 쏟아지는 햇살 속에, 다음 생에도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저의 작은 모습
    이 희미한 영상처럼 비쳐질 때면,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듯이 '나에게 한 번쯤은 재벌, 장관, 대학총장 등 능력 있고 활기 찬 삶이 주어
    져야 되지않을까‥‥'라는 생각이 안개처럼 마음을 뒤덮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초라
    한 현재의 삶을 등에 지고, 그 모든 것을던져 버릴 곳을 찾아 산으로 떠납니다. 결국
    등에 지고간 삶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 생의 평범한 삶이 그려진 개울의 작은 돌멩이
    를 가슴에 앉고 돌아 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곳에서 웅장하고 멋진 바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울의 작은 조약돌도
    있듯이, 평범한 사람의 삶에도 나름대로의 소박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생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들(어려운 병을 낮게하고 오랜 수련을 한 종교인, 예지
    능력이 있는 분,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꾼 인물 등)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잊혀진 과거입니다. 전생이 있었듯이 현재의 삶이 있고 다음 생도 확실히 있어,
    성실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정신적인 여유를 안겨 줄 것입니다.

                                                                       머리말중에서